[이달의 잇템]가성비템 ‘플리스’가 월스트리트 직장인 필수 유니폼이라고?

양모 가득 플리스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된 이유

조지연 기자 | 기사입력 2020/10/07 [18:37]

[이달의 잇템]가성비템 ‘플리스’가 월스트리트 직장인 필수 유니폼이라고?

양모 가득 플리스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된 이유

조지연 기자 | 입력 : 2020/10/07 [18:37]

[편집자주] 세상의 빠른 변화에 발맞춰 유행하는 제품 또한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달의 잇템'에서는 매달 유행을 선도하는 제품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 제품이 유행하게 된 배경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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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이나은의 SNS에 올라온 플리스 자켓 착용 모습  ©출처: 이나은 SNS

 

2020년 F/W 시즌을 책임질 잇템으로 ‘플리스’가 떠오르고 있다. 플리스 하면 ‘그게 뭐지’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품을 보면 ‘아! 그거’ 하고 딱 떠오르는 이미지를 가진 게 바로 이 ‘플리스’다. 

 

플리스는 푹신푹신, 곱슬곱슬한 양털이 아우터 겉면을 감싸고 있는 제품이다. 우리나라에는 올 한해 불매운동의 중심에 선 ‘유니클로’에 의해 ‘후리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졌다. 후리스는 일본식 발음이다. 원이름은 ‘플리스’(fleece)다. 

 

사전적으로는 플리스를 ‘털발이 길고 부드러운 양모나 짐승 털의 곱슬함을 살려 제작한 겉옷’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과거에는 양털과 같은 모직을 가공한 옷만 플리스라고 칭했으나, 최근에는 동물권과 환경 보호 등의 이유로 합성 섬유 원단을 그와 비슷하게 가공한 옷도 통칭해서 플리스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작년부터 MZ세대들(1980년~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 사이에서 플리스 패션이 유행의 중심에 섰다. 그전까지는 고가의 아웃도어 패딩이나 친구끼리 맞출 수 있는 숏패딩, 중·고등학생에게 유행하기 시작해 전 국민이 교복처럼 입고 다닌 롱패딩 등이 F/W 시즌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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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에서 한국의 여름에 대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영상이 SNS등을 통해 화제가 됐다.  ©출처:채널A

 

패딩이 F/W 시즌을 장악한 데에는 우리나라의 변화한 날씨 탓이 크다. 가을이 ‘트렌치코드’의 계절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우리나라 날씨는 ‘가을’을 잊은 지 오래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사계절을 표현할 때 ‘봄여어ㅓㅓ어어어어름가을겨어ㅓㅓㅓㅓㅓㅓㅓ울’이라고 말할까. 

 

그렇다 보니 국민 대다수가 쌀쌀한 봄이나 가을에 코트나 카디건을 겉옷으로 걸치기보다는 ‘가벼운 패딩에 반팔’ 정도를 평상복으로 걸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동경하는 일부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의 SNS 사진을 보고 ‘저게 여름이야, 겨울이야’라고 생각한다지만, 그들 또한 우리나라의 날씨를 접한 이후로는 ‘후덥지근하고 찌뿌둥한 여름’과 ‘칼바람이 얼굴을 강타하는 겨울’에 질색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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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벨벳 슬기를 비롯하여 많은 연예인들이 플리스 자켓을 일상복으로 연출한 룩을 선보이고 있다. ©출처: 슬기 SNS

 

F/W 패션에서 패딩이 ‘저무는 해’라면, 플리스는 ‘떠오르는 해’에 가깝다. 플리스를 입어본 이들은 보들보들한 감촉과 훌륭한 보온성, 패딩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착용감 등에 매료된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폴햄 △코오롱스포츠 △휠라 등에서 3만 원 전후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플리스부터 △노스페이스 △뉴발란스 △아디다스 △파타고니아 등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제작한 중·고가의 플리스까지 비교적 다양한 가격대의 플리스를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다. 

 

중·고가라고 하더라도 일명 ‘등골 브레이커’로 불렸던 패딩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이런 가격 메리트는 플리스가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주머니 사정에 맞춰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가심비’, ‘가성비’ 아이템으로 주목받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플리스’, 사실 우리나라에서만 유행하는 옷은 아니다. F/W 시즌 플리스를 제작했다 하면 매년 품절 사태가 벌어지는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플리스를 처음으로 상업화한 브랜드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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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파타고니아의 플리스 조끼가 월가의 유니폼처럼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출처:인스타그램

 

파타고니아에서 제작한 플리스 조끼는 ‘금융회사와 ICT회사가 즐비한 미국 월스트리트의 교복’으로 불린다. 파타고니아의 플리스 조끼는 2008년 금융 위기 이래로 월가에 ‘캐주얼 복장’이 유행하면서 직장인들의 유니폼이 됐다. 당시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금융계에서는 매주 금요일을 정장을 입지 않는 ‘캐주얼 데이’로 정하고, 이 조끼를 직원들에게 나누어주며 사기를 북돋웠다. 

 

게다가 애플의 팀 쿡 최고 경영자 CEO,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같이 이름만 들어도 내로라하는 재계 인사들이 파타고니아의 플리스 제품을 착용하다 보니 월스트리트에서 종사하는 이들에게 ‘플리스’란 우리나라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의 ‘대기업 사원증 목걸이’ 같은 존재가 됐다. 

 

점심시간에 ‘대기업 사원증 목걸이’를 목에 건채 한 손에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거리를 거니는 것이 우리나라 취준생들 사이에서 부러움과 선망의 모습인 것과 비슷하다. 월스트리트에 종사를 희망하는 취준생들 역시 평일에 월스트리트가의 대기업 로고가 박힌 파타고니아 플리스 조끼를 입고 거리를 거니는 것이 모두의 목표이자 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파타고니아의 플리스 조끼는 월스트리트의 교복 같은 위상을 갖게 됐다. 파타고니아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자사 플리스 조끼를 기업에서 주문하면 친절하게 해당 기업의 로고와 이름을 박아서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월스트리트가에 위치한 기업들이 파타고니아의 성명 덕분에 난처한 상황에 부닥치는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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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는 유튜브 채널을 활용해 자사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알리고 있다. 한글로 '고쳐서 오래오래 입으세요'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출처:파타고니아 공식 유튜브 채널

 

지난해 초, 파타고니아는 성명을 통해 “이제부터 환경보호에 우선순위를 두는 기업과 ’비  코퍼레이션‘(B Corporation) 기업에 한해 자사의 제품을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비 코퍼레이션 기업은 비영리기관인 비 랩(B Lab)의 인증을 받은 착한 기업을 의미한다. 이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은 연간 매출의 1%를 환경 보호나 공익적 목적에 사용해야 한다. 

 

물론 파타고니아 역시 연수익의 1%를 ‘자연세’라는 명목으로 자연 보호를 위해 사용하고 있기에 이미 지난 2012년 비 코퍼레이션 인증을 받았다. 비 코퍼레이션은 크게 △환경 △근로자 △고객 △경영 △커뮤니티로 나누어서 합산한 평가로 정해진다. 문제는 비 코퍼레이션 인증이 2년 단위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2016년 비 코퍼레이션 인증의 평균 점수가 55점이었는데, 파타고니아는 첫해 인증에 이미 107점을 기록했다. 그 후 2014년에 116점, 2016년 152점을 기록하면서 일명 ‘도장 깨기(?)’를 하고 있어 월스트리트가에 위치한 기업들 사이에서는 ‘비 코퍼레이션 인증’과 관련해 파타고니아에 항의를 하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학교로 치면, 전국 1등 모범생인 학생이 선도부에서 모범을 보이는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파타고니아의 이 같은 성명을 보도하면서 “이제 금융인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파타고니아 조끼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회사들은 자신들이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월스트리트 일대를 패닉 상태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파타고니아의 창업주이자 회장인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는 열혈등산가이자 환경운동가로 유명한 사업가다. 그는 어릴 때부터 등산을 좋아했는데, 일각에서는 ‘전설의 등산가’라고 불릴 정도다. 우리나라에 주한미군으로 참전했던 당시에도 북한산 인수봉에 자기 이름을 딴 ‘취나드 A’와 ‘취나드 B’ 루트를 만들었을 정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취나드 A와 취나드 B는 북한산 인수봉 클라이밍에 도전하는 등산가들의 인기 목표 지점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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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에서 올해 공개한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 가운데에는 왜 재킷을 사지 말라고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많다. ©출처:파타고니아

 

우리가 생활 속에서 입는 ‘플리스’ 제작의 부모인 ‘파타고니아’는 지금도 친환경 기업으로써의 명성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올해는 파타고니아에서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를 내 많은 기업과 소비자의 아이러니를 자아내기도 했다. 해당 광고에는 파타고니아의 후리스 자켓 사진과 해당 자켓을 사지 말아야 할 이유가 구구절절 적혀있다. 

 

파타고니아에서 환경친화적인 소비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 기획한 ‘Worn Wear’(원 웨어) 캠페인 역시 이 광고와 맥락을 같이 한다. 파타고니아는 원 웨어 캠페인에 따라 파타고니아 회원 모두에게 1인당 2벌의 제품을 무료 수선해주는 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놀라운 점은 파타고니아 자사의 제품이 아니어도 △올 풀림 △원단 찢어짐 △부자재 교환 △사이즈 수선 등의 AS 서비스를 진행해준다는 사실이다. 

 

올해 10년 만에 개정판으로 돌아온 이본 쉬나드의 저서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에는 저자 나오미 클레인의 서문이 머리말로 담겨 있다. 머리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알고서 하지 않는다면 모르는 것만 못하다.’(왕양명)

 

해당 저서는 원래 전 세계 파타고니아 직원들에게 회사의 철학을 설명해주기 위한 안내서 용도였지만, 출판 이후 10개 국어로 번역되면서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연구 교재로, 대기업에는 좋은 선례로 남게 됐다. 

 

2020년 우리나라의 F/W 패션을 장식할 것으로 기대되는 ‘플리스’를 보며 원조인 파타고니아의 철학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방 한편에 놓여있는 늘 입던 옷이 그 순간 이후로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뉴덕트=조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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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연 기자
jodelay@confa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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